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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 한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행동하거나 타인에게 결정을 맡긴다. 삶에서 마주하는 많은 문제들이 명확한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문제여서 그런 듯하다. 난생 처음만난 상황도 있고, 어느 쪽도 시원한 해결방안이 될 수 없는 상황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결정권을 포기하고 제3자에게 결정을 떠넘기곤 한다.

 

모든 사람들이 처음부터 이런 성향이었던 건 아닌 것 같다. 원인을 추측하자면, 초등교육부터 (혹은 그 전부터) 겪게 되는 한국의 획일적인 분위기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결정하지 않고 정해진 하나의 정답을 찾는 태도를 갖게 한 것이라 생각한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빠른 경제 성장의 배경에는 학생과 노동자들을 단기간에 압축 교육하기 위한 주입식 교육이 있었다. 압축적인 성장을 위해서 하나하나 직접 이해하고 직접 생각하는 방법 따위는 가르치지 않았다. 이미 존재하는 하나의 정답을 잘 외워서 그에 맞는 답을 내놓는 기계적인 학습만 성행했다. 이런 상황을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직접 결정하는 일에는 익숙치 않은 것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는 스스로 결정하는 힘을 기르려 부단히 애써야 한다.

 

내가 처하거나 맞닥뜨린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는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타인은 내가 전달한 편향되고 지엽적인 정보만 가지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또한 그의 판단 근거 역시 그의 개인적인 경험과 지식에 기반할 것이므로 나의 상황에는 들어 맞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타인이 나보다 더 나은 판단을 내려줄 것이라 믿는 것은 당시 책임의 무게에서 벗어나기 위해 합리화하는 것이다(경험과 전문 지식이 중요한 일부 경우에는 사실일 수 있겠다). 타인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은 내 자주적 판단의 재료가 되어야지 판단 그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선택이라는 행위는 인간이기에 누릴 수 있는 축복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인간을 동물과 구분짓는 것은 자유의지 유무이다. 유전자와 환경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직접 선택해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인간뿐이다(완벽히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어떤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부합하는 행동만을 하는 것은 인간이 아닌 동물이나 인공지능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자신만의 가치 체계를 스스로 형성하고, 그에 부합하는 선택과 행동을 하기 위해 유전자와 환경을 거스르는 것은 인간이기에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그리고 이제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특정한 가치를 맹목적으로 쫓는 사람은 예전과 달리 경쟁력을 갖출 수도 없을 것이다. 이 시대는 생산자의 시대이다. 세상을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고 부품으로서 살아가는 사람과,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가치를 새롭게 제공해줄 수 있는 생산자로 살아가는 사람의 시장 가치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특히 인공지능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지금, 중요한 선택들을 누군가에게 위임하고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생각한다면 머지 않아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선택을 내리든 그 결과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은 나다. 선택의 책임을 위임하는 일은 자신의 자유를 위임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선택의 책임을 자유만큼이나 소중히 여기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