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非개발

제 꿈은 가볍습니다

devhanyoung 2024. 3. 30. 16:20

 

 

1. 내 꿈은 뭘까? 🤔

 

"라이언은 꿈이 뭐예요?"
나를 항상 긴장하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나는 평소에도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준비했다.  
이 질문에 확고한 신념과 목표를 드러내지 못하면 내 밑천이 드러나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이렇게 꿈에 무게감을 느끼게 된 건 창업 시절의 영향이었다.  
내가 속했던 창업 팀의 대표는 인생에서 만난 사람 중 꿈이 가장 크고 확고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는 당당히 "에어비앤비를 뛰어넘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꿈을 이야기했다.  
'뭐? 에어비앤비를 넘겠다고?' 놀람 반 의심 반의 마음이 들었다.  
아니, 솔직히 처음엔 의심이 90이었다.  
그런데 한 시간이 넘는 커피챗 내내 반짝이는 안광을 보고, 그의 꿈이 진짜임을 알 수 있었다.  

대표가 굉장한 꿈돌이여서인지 꿈은 우리 팀에서 항상 핫한 주제였다.  
팀원들은 모두 각자만의 멋진 꿈을 가지고 있었다.  
한 팀원은 돈 생각 하지 않고 주위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삶을 꿈꿨다.  
한 팀원은 좋아하는 동료와 평생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며 사는 삶을 꿈꿨다.  
한 팀원은 직접 만든 서비스를 코엑스 대형 간판에 걸겠다는, 구체적인 꿈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꿈돌이들로 가득한 팀에서 자연스럽게 내 꿈은 무엇일지 매일같이 고민하게 되었다.   
나도 다른 팀원들처럼 멋지고 거창한 나만의 꿈을 가져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위대한 꿈을 가진 창업가들의 연설을 찾아보기도 하며 내 꿈은 무엇일지 고민했다.  
흥미, 적성, 비전을 고려해 가며 내가 품어야 할 꿈은 무엇일지 열심히 고민했다.  

 

2. 시행착오였꿈 🫠

그래서 나는 어떤 꿈을 가지게 됐을까?  
그 당시 나는 오로지 창업에만 몰두했으며 성공하겠다는 의지와 욕구로 가득했다.  
그리고 미시적인 사고보다는 거시적인 사고에 강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기업의 경쟁력은 우연한 성공 경험이 아닌, 지속 가능한 구조뿐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이 생각들을 종합하여 '위대한 기업의 DNA(내지는 초창기 구조)를 세우는 데 일조한다'는 꿈을 가졌다.  
이 멋진 꿈은 내게 열정의 원동력이 되어 줬다.  
  
그런데 열정도 잠시, 어느 순간부터 내 멋진 꿈이 도리어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첫째,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강했다.  
'크고 거창한 꿈을 가진 내가 이것밖에 못하다니'하는 생각에 괴로울 때가 종종 있었다.  
이상과 현실 간의 간극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둘째, 항상 좋아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꼈다.   
'오늘은 좀 하기 싫은데?'하는 솔직한 마음을 짓누르게 될 때가 많았다.  
쉬고 싶은 날에도 늦게까지 남아 일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스스로 주었다.  
셋째, 다른 흥미를 발견할 때 죄책감을 느꼈다.   
프로덕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개발에 대한 흥미가 점점 커졌다.  
그런데 이 사실을 부정하려 애썼다.  
내 꿈을 배신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섣불리 결정했던 꿈이 나를 좁은 바운더리에 가두어 괴롭게 했다.  
꿈이 내 삶을 지탱하는 게 아니라 내 삶이 꿈을 지탱하는 구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꿈은 나에게 충분히 어울리지 않았다.  
당시의 상황에 나를 맞추려 하다 보니 갖게 된 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꿈을 너무 무겁게 여긴 탓에 빨리 지쳐 떨어졌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어떤 걸 이루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했는데 자꾸만 단언하려 했다.  
그래서 나와 맞지 않는 꿈을 꾸고, 그 꿈에 나를 맞추려는 과정 속에서 고통을 겪었다.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게 인생인데, 어떻게 지금 당장 꿈을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  

 

3. 그래서 지금 제 꿈이 뭐냐면요 😀

솔직히 아직도 내가 어떤 꿈을 가져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무엇을 가장 좋아하는지, 혹은 가장 잘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지금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개발이 재밌고, 창업 시절 못 다 이룬 꿈을 언젠가 이루고 싶다는 소망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개발을 열심히 하다보면, 비즈니스를 깊게 파볼 기회가 생길거야'하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살고 있다.  

너무 대책이 없나 싶기도 하지만, 이 상태의 내 삶이 더 마음에 든다.  
잡념 없이 현재에 몰입하고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들로 삶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꿈은 일종의 의미 부여라 생각한다.  
본질적으로 무의미한 이 세상에서 나만의 의미를 만들어 내는 노력의 일환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의미 부여가 내 삶의 목적으로 둔갑하는 순간이 있다.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내 존재 가치가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꿈이란 건 어디까지나 의미 부여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먼저이고, 꿈은 그다음이다.  
중요한 건 위대한 꿈을 갖는 게 아니라, 나에게 가장 잘 맞는 꿈을 찾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그 꿈이라는 게 원대한 목표를 이루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내 꿈도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꿈은 뚜렷한 어떤 지점을 가리킬 수 있지만, 내 꿈도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꿈이 꼭 위대하지 않고 뚜렷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안다.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당당히 아직 내 꿈은 가볍다고 대답할 수 있다.  
이러이러한 걸 하고 싶지만, 솔직히 이 꿈이 언제 바뀔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나는 자유롭다.  
내 꿈이 내 생각과 행동을 제약하지 못한다.  
그때그때 나에게 즐거움과 영감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좇으며 매 순간에 충실할 수 있다.  

막연하게 가리킨 저어쪽으로 열심히 걸어가다 보면, 꿈꾸지도 못했던 멋진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여러분은 꿈이 무엇인가요? 🙂